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by NamX

원래는 페이스북(아래 링크)에 5월2일부터 5월5일에 걸쳐서 올렸던 글인데, 올릴 때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이 이슈에 대해서 알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닫힌 공간의 느낌이 강하므로 비교적 열린 공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이곳에도 글을 올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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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


2017년 1월 9일, 위메이드의 대표(이하 위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에 있으면 점심이나 차 한잔 할 수 있냐고.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 우주는 우주의 탄생, 그러니까 빅뱅을 맞이 하기 위해서, 더 정확히는 산후조리원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 처가에서 살고 있었다.

1월 15일 일요일 아침, 위대표와 압구정에서 차를 마셨다.

창업 얘기를 했다. 나는 십억 정도 투자해 준다고 하는 분들이 꽤 계셨지만, 그렇게 십억 정도의 투자를 받는다고 해서 창업을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수십억 얘기도 두건 또는 보기에 따라 세건이 있었다. 그러나 수십억을 투자 받는다 하더라도 아마 그것 보다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처럼 딥러닝 및 이것저것을 공부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아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나는 18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때로는 백수 때로는 프리랜서처럼 활동 하면서 꽤 행복 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전부터 나는 내가 꿈꾸는 형태의 창업에는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우선 나는 한두개의 아이템으로 제품이나 서비스 더 나아가서 사업을 성공시킬 자신이 없었다. 나의 지난 역사를 스스로 돌이켜 볼때 열개 시도 해 보면 한개는 크게 성공, 한개는 작은 성공, 나머지 여덟개는 실패였다. 그리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회사에서 같이 일 해 보자고 멤버들을 모집 하고 리드해 나갈 자신도 없었다. 당장의 연봉은 꽤 낮아지겠지만 우리는 재밌는 일을 할 거고, 돈도 많이 벌거고,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거고, 아무튼 좋은 회사가 될 거라는, 그런 말을 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었다.

누가 백억 정도 준다면 모를까.

백억이면 대략 3년간 대략 10개 이상 정도의 아이템을 시도해 볼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우리 멤버들도 돈 걱정 없이 신나게 제품 개발, 서비스 혁신, 고객 창조에 집중할 수 있을 듯 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진지하게 응할 투자자는 없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나는 창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대표는 백억을 투자 할 수 있다고 했다. 예? 뭐라고요? 나는 너무 놀래면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뭐라고요?"라는 말이 나가버리는 습관이 있다. 나는 여러번 확인했다. 그거 정말 확실한 말인지, 그리고 그 백억은 정말 없어져도 되는 돈이냐고. 위대표는 위메이드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작게 여러 군데 투자 하는 것 보다 크게 몇 군데만 투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곧 수천억에서 일조 정도의 현금을 보유하게 될 것 같고, 그래서 백억 정도는 잃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3년 정도 해 보고 안 되면 아마 이어서 더 투자 하고 싶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오히려 그때 가서 내가 더 이상 사업을 안 하고 싶어 한다면 아쉬울 것이라고도 했다. 10년 정도 꾸준히 투자하고 성과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잃어도 된다고 하는 돈 백억, 그리고 딥러닝에 대한 나의 믿음, 좋은 회사에 대한 오래된 꿈, 같이 하고 싶다고 언제 창업하냐고 연락해 오던 좋은 사람들, ... 내가 정말 창업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아니 창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번에도 피한다면, 나는 영원히 창업을 피하게 되는 것 아닐까?

@ 쓰다 보니 길어져서 여러번에 걸쳐서 나눠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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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2


투자금 백억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 얘기를 얼마나 믿어도 되는 걸까... 나는 과연 창업을 하고 싶긴 한 걸까. 이러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백억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았다. 일단 우리 업계 선배님들, 그리고 투자와 창업에 대해 경험이 많으신 분들을 열심히 만나뵙고 많은 말씀들을 들어 보기로 했다.

선배님들은 우선 투자금에 다들 놀라셨다. 멤버도 없고 아이템도 없는데 백억이라니. 한국 우리 업계 투자 역사에 없었던 일이라 했다. 나도 크긴 큰거겠지 정도로 생각 했었지만 그게 역사에 없을 정도로 큰 것인지는 몰랐다. 가장 유사한 예는 약 다섯명 이하 정도의 멤버가 삼년 정도 뭘 해 보다가 다 실패 하고 새롭게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해서 십억을 투자 받은 예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위메이드(이하 위사)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현재 위사는 충분히 투자 여력이 있고...라기보다 오히려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일테고 사업 보다 투자를 더 잘한다는 평도 있다고 했다. 나는 사실 게임 업계에 별 관심이 없어서 위사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몰랐고 사실 이름도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여하간 투자 여력이 충분히 있다는 말에 일단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돈 때문에 날 괴롭히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내가 익숙한 우리 동네, 그러니까 인터넷 업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운 업계인 게임 업계의 회사니까... 본사도 판교에 있고 어느 정도 내 예상 범위 안에서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밸류에이션은 육백억이었다.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위사 내지는 위대표 또는 위의장에게 이런 저런 이슈가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을 말씀 해 주신 분도 계셨다. 하지만 결론은 여하간 높은 밸류에이션은 나쁜 점 보다는 좋은 점이 훨씬 크며, 그 정도 투자금과 투자 조건, 그러니까 순수한 FI(재무적 투자)라는 조건은 위스타(위*)에 이런저런 이슈가 있더라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선배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거부 할 수 없다. 거부 할 수 없다? 거부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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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나는 이 투자를 거부할 수 없고, 창업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차피 내가 이번 인생은 학계가 아니라 업계에서 살기로 한 이상 죽기 전에 창업을 해 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지금인가. 하필 우주도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이때란 말인가... 게다가 딥러닝... 딥러닝은 꼭 지금, 바로 올해 시작 해야 할 것 같긴 하고... 업계 역사에 없던 일이라니, 이게 잘 못 되면 업계 흑역사로 크게 남겠구나. 심적 부담도 컸지만, 그만큼 해 봐야겠다는 도전 의식도 하루 하루 슬금슬금 커지고 있었다.

처음 백억이라는 숫자를 들은 후 대략 한 달 정도는 계속 업계, 창업, 투자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의견을 들어 보고, 또 원래 하던 딥러닝 공부 및 강의를 계속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창업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너무 많았다.

잘 못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에 직원 누군가가 횡령을 하면 그 책임이 대표인 나에게도 오는 것은 아닐까? 어떤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때 내가 감옥에 가지는 않을까? 사업이 망했을때 나와 우리 가족이 돈을 갚아야 하는 일은 없는 건가? 멤버들에게는 얼마나 주식을 나눠 줄 수 있는 걸까? 내가 주식을 많이 나눠주겠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 위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위사는 경영에 얼마나 관여하고 싶어 할까?

그렇게 고민하며 지내던 중... 위 대표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처음 얘기를 나눈 후 딱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2월16일 목요일 저녁. 삼성동 다이닝텐트였다. 나는 미팅에 앞서 위와 같은 질문들을 메모장에 정리 했다.

@ 길어져서 나눠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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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3


2월16일 저녁 삼성동 다이닝텐트. 왜였을까. 나는 다이닝텐트가 당연히 중국집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다른 이름과 헷갈렸겠지. 아무튼 다이닝텐트는 중국집이 아니고 와인이 잔뜩 쌓여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위대표는 한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었는데, 나는 아래의 "딥러닝 공부 방법" 글을 쓰고 있느라 그 문자를 보지 못 하고 있었다.

https://www.facebook.com/dgtgrade/posts/1340177956041067

결국 약속시간이 거의 다되어 도착했다. 한 시간이나 기다린 위대표에게 매우 미안했다.

다이닝텐트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아, 이런 분위기가 바로 백억 투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인가 보군! 고기를 썰며, 와인을 마시며 나는 준비해 온 얘기들을 꺼냈다. 우선 첫번째로 사업이 잘 안 되었을때 내가 감옥에 가게 되거나 경제적 책임을 질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위대표는 상법에 나온 배임 횡령 등은 막을 수 없겠지만 열심히 사업 하다가 잘 안 되는 케이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약속 한다고, 계약서에 그렇게 반영하겠다고 했다.

여러가지 와인을 돌아 가면서 마시다 보니 얘기 중간 중간 와인 얘기들도 나왔는데 사실 관심 없고 잘 이해도 안 되어 적당히 넘겼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헝그리 하게 스타트업을 운영 할 생각이 없으며 멤버들을 고생 시켜 가면서 같이 백미터 달리기를 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위대표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템도 이제부터 찾으면 되고,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하는 것도 좋고, 멤버들에게 내 주식을 나눠주는 것도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스톡옵션도 많이 발행해도 된다고 했고.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백억을 투자 할 수 있지? 그래서 물어봤다.

그런데 제가 투자 받자 마자 예를 들어 그 다음날 회사 문닫으면 저만 팔십억 이상 챙기고 끝나는 거 아닌가요?

위대표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상법상으로도 그리고 투자 계약서 상으로도 못 한다고. 회사의 청산 절차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구나. 이해했다. 민법 형법 외에, 내 인생에 상법이란게 처음으로 머리속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아마 이 날이었던것 같다. 사업은 일본에서 할 건지 한국에서 할 건지 위대표가 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웃었다. 백억 투자를 결정한 사람으로부터 받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일본에서의 나의 능력의 한계로 하게 되면 당연히 한국에서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무튼 꽤 오랜 시간 얘기했는데 내가 크게 걱정하던 것들, 그리고 작게 걱정하던 것들, 모두 다 위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하나도 걱정할게 아니었다. 위대표는 정말 멋있었고 아직 만나진 못 했지만 위의장은 매우 훌륭한 분임에 틀림 없고 위사는 정말 위대한 회사였다. 만약 우리 회사가 성공하면 위사에게 지분율 이상으로 더 돌려줘야 할텐데 그런 방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나는 집에 돌아오며, 거의 확실히 깨달았다. 아, 이제 더 이상 창업을 피할 길이 없구나. 어떤 식으로든, 그러니까 내가 기존에 받았던 여러가지 형태의 다른 제안들과 섞든 안 섞든 아무튼 간에 창업을 하긴 하겠구나.

@ 길어서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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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4


2월 17일, 여전히 해는 동쪽에서 떴지만 분명히 뭔가 그 전과는 다른 해가 떴다.

그 동안, 그러니까 내가 일본에 있을때부터 출산차 잠깐 한국에 들어온 이후까지 나에게 좋은 제안을 주신 분들이 많았었다. 그 제안들과 위사의 제안을 섞을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보았다. 그 중에서 섞을 수 없을 것 같은 안들, 그러니까 입사 제안 같은 것들은 모두 아쉽지만 거절 하였다. 그러나 섞을 수 있겠다 싶은 안들도 있었다. 이 안들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 봤으나 금새 모두 사라졌다. 투자금 백억과 밸류에이션 육백억이 너무 커서 다른 것들과 얘기가 진행이 잘 될 수가 없었다. 나도 보이저엑스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더 바라는 바도 없지만, 좋은 파트너 분들, 회사들을 모셔보려 했는데, 그게 이 돈의 크기 때문에 잘 안 되었다. 돈이 커도 문제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동시에 위대표는 위사의 투자실무자를 소개 시켜 주었고, 샘플계약서도 보내주었다. 계약서를 보니 일단 숨이 콱 막혔다. 일단 주주간계약서와 신주인수계약서 이렇게 두개인데 각각 수십장이고,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문장 하나 넘기기가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다. 상법, 법인, 투자 등등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창업을 했으면 사업을 해야지. 사업을 하려면 멤버들을 모아야 하고, 멤버들을 모으려면 사무실이 있어야지. 계약서만 보고 앉아 있는게, 주객이 전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계약을 맺고 투자를 받게 되면 이 투자금이 너무 크다 보니 멤버들에게 주식을 양도 하는 것도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톡옵션은 또 상법상 10% 제한이란게 있네. 아 이런, 한번에 큰 투자금을 받게 되면 이런 문제도 있구나. 그래서 멤버들을 빨리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몇가지 확인을 했다. 중요한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대표에게 직접 물어봤다. 계약서를 검토하면서 동시에 멤버를 모으고 사무실을 구하기 시작해도 되느냐고. 위대표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좋은 사무실을 구하고, 좋은 멤버들이 빨리 모이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이것이 내 스스로도, 그리고 위사가 보기에도 나의 첫 시험대가 아닌가 생각했다. 훌륭한 멤버들이 즐겁게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백억 투자에 어울리는 좋은 사무실도 빨리 구하고 멤버들도 얼른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을 구하려면 보증금이 필요한거 아닌가? 위사와 더 얘기를 하다 보니 백억 계약서는 몇십장이나 되고 서로 검토도 오래 걸릴테니 우선 십억에 대해서만 금전대차계약을 하기로 했다. 과연, 금전대차계약서는 받아보니 겨우 두장짜리였고, 내용도 별거 없었다. 금전대차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내가 봐도 별거 없어 보였다. 회계사와 변호사에게도 물어봤는데 이 정도 내용이면 별거 없다 했다. 심지어 개인으로서의 내 이름은 들어가 있지도 않아서, 혹시라도 나나 내 가족이 큰 빚을 지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안해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그래도 내가 워낙 걱정이 많은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다. 다른 여러 사람, 그러니까 멤버들, 사무실 임대인, 부동산중개업자, 인테리어업자 등등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혹시라도 있을까 불안했다. 너무 불안해서 그 이후에도 몇번의 확인을 거쳤다.

- 혹시라도 이사회를 통과 못 할 일은 없는가?
- 사무실 보증금은 정말 괜찮은가?
- 금전대차계약도 정말 확실한가?

예를 들면 다음 캡쳐 이미지들과 같이 확인했고 결론은 언제나 확실하고 괜찮다는 것이었다.


<2월27일>


 <3월17일>


이렇게 카톡으로 전화로 메일로 위대표의 확인에 확인을 거쳐가면서 진행했다. 나는 아주 가끔, 그러니까 며칠에 한번씩 불안함이 커진 순간에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곤 했다. 위사는 상장사고, 돈도 많고, 위대표는 그 회사의 대표이사다. 대표이사의 약속은 증거가 남아 있다면 회사가 부인 하기 쉽지 않을 거다. 꼭 계약서 도장을 찍지 않더라도 이렇게 수없이 많은 카톡과 메일로 오간 내용들이 남아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상당한 법적 효력을 가질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것이 잘 못 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혹시나 잘 못 되더라도 그 피해액은 상당히 크게, 그러니까 피해를 본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있을만큼 보상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씩 했었다. 역시나 내가 원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니 괜한 걱정을 하는 것 아닐까? 위대한 위사에 대해서 참 별 걱정을 다한다고 생각하고 금새 지나갔다.

이렇게 2월, 3월, ..., 나는 어느새 진짜로 사업 준비를 열심히 시작 하고 있었다. 이전에 내가 일주일에 이틀씩, 하루씩 다니던 두개의 직장은 모두 그만뒀고, 다른 여러가지 형태의 제안들은 모두 거절했고, 딥러닝 강의도 일단 추가로는 거의 받지 않았다.

보이저엑스라는 회사명을 정하였다. 순수함. 호기심. 모험. 기술. 그리고 아마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했겠지만 이 회사명에는 "엄청난 투자"라는 뜻도 숨어 있었다. 빅사이언스, 로켓사이언스가 있었기에 보이저호 같은 게 가능했던 거다. 나는 회사명에 "엄청난 투자"라는 뜻을 담아 위사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법인을 설립했고, 사업자 등록도 했고, 회계사와 계약도 했다. 이 엄청난 계약을 도와줄 변호사도 구했다. 아직 사무실은 계약을 못 했지만 수십명의 후보 멤버들을 만나봤고, 그 중 일부 멤버들은 어느 정도 얘기가 진행 되었고, 이전 직장에 퇴사까지 통보한 사람이 2명이나 나왔다. 주변 동료에게 퇴사 논의를 시작한 사람도 2명이 있었고, 1명의 후배는 휴학중에 취직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우리쪽에 조인하기로 했다. 아, 방학때 잠깐 알바를 하기로 한 학생도 3명을 구했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일본 직장에 퇴사 얘기를 하였고, 우리는 한국에서 살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어린이집에는 일단 줄을 섰고, 일본 집 이사 계획도 세워보기 시작했다.

@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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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5


4월. 백억 & 육백억. 보이저엑스 & 위메이드. 이미 업계에는 소문이 꽤 나있는 것 같았다. 스타트업 또는 인터넷 아니면 게임 업계의 투자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큰 투자였다.

미디어에서 관심을 가질 것이고 언론사 인터뷰를 주선해 주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나는 동네 카페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는게 반갑지만은 않을 정도로 나 개인이 알려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듣자 마자 바로 거절하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이건 어차피 기사가 크게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거고, 분명히 그 중 일부 기사에는 내 얼굴도 나갈거 같았다. 아마 페이스북 사진 중에서 카피 & 크롭 해서 나가겠구나 싶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또 보이저엑스의 대표가 되려면 어차피 퍼블릭 하게 알려질 각오도 해야 할 것 같고, 스스로를 포장도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고, 기왕 기사가 나갈거 나 혼자가 아니라 위대표와 내가 함께 인터뷰를 하면 아름다운 기사로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보이저엑스가 향후에 멤버들을 모집 하거나 사업 파트너 회사들을 찾는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위대표와 상의후 이 계약이 마무리 되어 공개할 수 있게 된 이후에 함께 인터뷰를 하기로 하였다. 나는 보이저엑스는 훌륭한 스타트업, 위사는 위대한 투자사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했다. 위대표는 보통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듯 한데 나도 검은색 옷을 입으면 괜찮을까? 이상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

한편, 나는 열심히 멤버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스타트업에 사람 뿐이 더 있나.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 사람부터 모아야지. 돈을 보고, 아니 돈만 보고 오는 멤버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처음부터 돈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봉이나 주식 등을 포함한 보상 얘기는 멤버에게도 보이저엑스에게도 매우 중요한 얘기다. 나의 이런저런 많은 필터들을 모두 거친 사람들에게는 보상까지도 얘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연봉이나 업무 환경 면에서 아주 헝그리한 스타트업은 아닐 것이고, 삼년 동안 즐겁게 일 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이 있을 것이고, 시작할때의 주식, 그러니까 종이 조각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그 종이 조각의 가치가 꽤 높다고 얘기했다.

업계 경험이 좀 있는 멤버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나에게 반문하였다. 당연한 반문이다. 나는 이러저러 해서 우리 투자사가 그러한 큰 투자를 하기로 하였고, 그 투자사는 상장사고, 돈이 매우 많고, 대표이사가 이런저런 약속을 했고, 업계에 소문도 꽤 났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이 투자가 깨지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멤버들에게 얘기하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개인적으로도 이런 저런 액션들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내가 한다니까 뭐든 간에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 딥러닝은 크게 잘 될거라고 믿는 사람, 그 정도 돈이 있으면 삼년간 뭐든 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개발자, 기획자, 사업가, 등등 각자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튼 관심을 보이고 액션까지 취하는 멤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한명은 라인을 퇴사 했다. 한명은 카카오에서 퇴사 절차를 밟고 마지막 휴가 기간에 들어갔다. 한명은 쉬고 있는 상태였는데 다른 구직활동을 중단했다. 두명은 보이저엑스로 오기로 확정 후 현재의 직장에 정식 퇴사 통보를 할 날짜를 고민하고 있었다. 두명의 학생은 보이저엑스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기로 했고 한명의 학생은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십여명의 후보 멤버들과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십억 금전대차계약서는 내용도 너무 간단하고, 확실히 진행 되는 것이었기에 검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우리측 로펌과 위사측 법무팀 검토를 마무리 했다. 백억 투자 계약서도 큰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가 다 끝났고 우리측 로펌의 검토가 본격적으로 진행 되면서 단어 하나 하나까지 검토 및 수정하는 단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창업, 또는 투자 선배들에게 상담을 해 보니, 어차피 그 정도 돈이 있으면 아끼는 것 보다는 잘 써야 하는 거고, 잘 쓰려면 사무실을 크고 좋은 것을 구하라고 하나 같이 얘기하더라. 왜냐면 어차피 사람 금방 늘어날텐데 (늘어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사 비용, 인테리어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좋은 사무실을 구하기로 마음 먹고 결국 한달 넘게 십군데 이상의 사무실을 돌아 본 후, 아주 좋은 사무실로 계약했다. 사무실로 사용하기에도 좋은 신축 단독 주택이었다. 사무실 임대인은 법인이 아니라 개인이었고 거기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 임대차 계약이 깨지면 얼마나 큰 일이 생기는지 나에게 설명했다. 계약금은 삼천만원인데 이 계약금이 문제가 아닐 정도로 큰 문제라고 했다. 나는 만에 하나 이 임대차 계약이 깨지게 될 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나에게는 얼마나 더 큰 일이 생기는지 설명을 드리면서 안심 시켜 드렸다. 임대인은 좋은 임차인을 고르는 입장이셨기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명함을 드리면서 내 이름을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시면 좀 더 안심이 되실 것이라고, 그리고 B612라고 아마 따님은 아시는 앱일텐데 그거 만들던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한달 넘게 고민하던 사무실을 구하고 나니 너무 즐거워서 바로 위대표에게 연락했다. 사무실 건물 사진도 보냈다. 위대표는 "잘 하셨습니다." / "좋은데요."라고 화답하였다.

조인한, 또는 조인할 멤버들이 딥러닝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컴퓨터도 샀다. 딥러닝 연구개발용으로 사니 한대당 사백만원 쯤 들더라. 대부분의 멤버들이 아직은 필요 없다고 해서 일단 두대만 샀다. 책상도 알아보니 주문후 도착까지 사주나 필요하다고 해서 일단 여섯개만 주문했다. 혼자 이것저것 다 하려니 너무 시간이 부족하고 대표가 이런 일들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 회사로서 아깝다 싶어서 일단 조인 확정된 멤버들에게 부탁해서 단독주택에 설치할 세콤도 알아보고 네트워크 공사 등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살 집을 계약했다. 나는 일단 십년은 한국에 있겠다고 생각 했기에 우리의 십년 가족계획에 맞는 집을 구했다. 처가에서 가까운 집 중에 적당한 크기의 집이 너무 안 구해져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차피 보이저엑스에서 받을 연봉도 꽤 될거고 향후 십년의 가족 계획도 있고 해서 집값에 대해선 너무 크게 걱정을 하지 말기로 마음 먹고 빨리 구할 수 있는 더 큰 집을 구했다. 아내는 일본 회사의 퇴사 계획도 진행하고, 일본 집도 정리 하러 우주를 데리고 잠깐 일본에 들어갔다.

@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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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6


IR(투자설명회 등)은 언제해?

어느날 누군가 물었다. 아,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그러게. 그렇지 원래 단 1억의 투자를 받더라도 IR이란걸 해야 하는 걸텐데, 난 IR 같은 거 안하니까, 정말 편하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위대표에게 물어봤다. 우리는 그런거 안하나요? 위대표는 그런건 필요 없고, 그냥 혹시 Vision Statements 같은 문서가 있으면 공유 해 달라고 했다. 음... Vision Statements 문서라... 처음 들어본 단어이긴 했는데 일단 사업계획서가 아니란 점에 안심 했다. B2C 스타트업이 아직 제품도 서비스도 없는데 만든 사업계획서 같은 것은 종이 낭비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Vision Statements 정도라면 뭐... 적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여하간 보이저엑스에게는 아직 그런 문서는... 커녕 어떤 문서화된 계획도 없었기에 곧 작성해서 드린다고 했다. 위대표 말을 들어보니 원래 내가 늘 하고 다니던 말들을 정리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정리하다 보니 이게 내가 이사회나 IR에서 발표할 것 같으면 슬라이드로 만들고 원래 내 스타일대로 키워드만 나열해서 적으면 되는데, 내가 발표할 게 아니면 내용을 좀 상세히 적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표에게 물었다. 제가 발표해야 하나요? 위대표는 그럴 필요 없고, 사실 이사회도 형식적인 것이고, 이사회에서 이 문서를 보거나 하진 않을 거라 했다. 그냥 사내에서 나를 잘 모르고 또 직접 만나보지 못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을 정리만 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군, 그거 좋군. 그냥 후딱 작성했다. 딥러닝 B2C 예제 아이템도 수십개쯤 떠오르는 것 중에 대강 다른 분야로 볼 수 있는 거 다섯개 정도 골라 봤다. 어차피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도 않을거고, 의사결정자들이 보지도 않을 거라면 내가 뭐하러 거기에 시간을 들이겠는가. 그 시간에 멤버들 모집하고 사업 아이템 고민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후딱, 한두시간만에 작성하긴 했는데 그래도 작성하고 보니 그냥 버리긴 아까워서 조금 더 정리하고 다듬은 후에 조인하기로 한 우리 멤버들과 얘기 진행 중이던 후보 멤버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보이저엑스의 방향에 대해서 공유하는 용도 정도로 사용했다.

그때 후딱 만든 파일: 왜 VoyagerX인가? https://1drv.ms/b/s!AjttQ_m8CMHwlhmKi0TgKfCIjxLe

그렇게 열심히 차근차근 사업 준비를 하던 어느날 얘기 중에 "의장"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그래도 투자금 백억, 밸류에이션 육백억이나 되는 투자인데 의장님과 인사 한번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위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연하지. 우리 물주님을 드디어 뵙게 되겠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이런 투자가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했고, 원래 돈 많고 높은 분들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엔 우리 물주님이시니 약간 기대도 되었었다.

한편 일단 금전대차로 처리하기로 한 십억은 위사의 내부 절차상 4월말 보다 5월1일이 편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또한, 역시 위사의 내부 규정 때문에 십억부터는 이사회를 거쳐야 하니 십억 말고 구억은 형식적인 이사회조차도 거치치 않고 바로 된다고 어떠냐고 제안이 와서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백억 계약서 내용에 대해서는 위사 법무팀 검토가 한번 끝난 버전을 우리 로펌이 단어 하나 레벨의 검토까지 완료 했고 다시 위사에 전달 하였다. 위사 투자 담당자는 최종적으로 법무팀 검토를 받긴 해야겠지만 위사의 의지도 있고 그 동안 얘기나눈 것도 있고 하니 거의 이대로 진행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 이제 위의장님께 인사 드리고 5월1일에 구억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백억 계약 마무리 하고 열심히 사업을 진행 하는 일만 남았다.

위의장과의 인사 자리는 4월24일 월요일 11시 판교 위사 본사로 잡혔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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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7


4월24일 월요일 드디어 위의장을 만나는 날이다.

내가 옷을 약 30초라도 신경을 써서 입는 날이 가끔 있는데 이날은 한 60초는 신경 썼던 것 같다. 우리 업계에서 옷을 그 이상으로 너무 잘 입는 것은 옷을 아예 못 입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기도 하지 않던가. 그리고 약속시간 11시의 10분 전에 판교 위사 본사에 도착했다. 위사 투자 담당자가 위의장은 약속에 좀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그리고 위대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담당자의 말도 그렇고 아마도 위사의 크런치 이슈 대응에 바쁜 거 아닐까 싶었다. 뭐, 여하간 의장과 대표는 여러가지 이슈로 바쁜 사람들일테니 내가 기다려야지 했다. 결국 1시가 되어서야 만났다. 결국 무슨 일 때문인지 아무튼 위대표는 이 미팅에 못 들어왔고, 위의장만 들어와서 일대일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위의장은 놀랍게도 내가 대강 만들었던 Vision Statements 문서를 보고 있었다. 아, 저걸 의장이 볼 줄 알았으면 신경 써서 만들걸... 아이템도 좀 제대로 고르고, 슬라이드도 좀 예쁘게 할 걸... 위대표는 왜 대강 만들어도 된다고 한건가... 싶었으나, 뭐... 이미 늦었다. 그리고 사실 크게 상관도 없었다. 어차피 위의장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해가 있지 않은 상태였다.

위의장의 첫 말은 본인은 인공지능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뭘 하겠다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음... 이거 뭔가 그냥 인사 드리고 덕담 듣고 나오는 자리가 아닌가보다 하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일단 나는 위의장이 개발자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는 버전으로 딥러닝에 대해서 최대한 쉽게 설명을 하였다. 위의장은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렇게 쉽게 설명 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며 이제서야 인공지능이 뭔지 알겠다며 흡족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위의장에게는 인공지능, 나에게는 딥러닝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나눴다. 나는 얘기가 매우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위의장은 위사는 오로지 IP 사업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래서 인공지능 같은 기술이 나오면 그냥 쓰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어차피 위사가 IP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위대표에게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고, 보이저엑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투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얘기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는 위의장에게 어차피 위사가 보이저엑스에 투자를 하고 인연을 계속 이어갈테니까 내가 종종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다고 하며, 바로 IP 사업에도 인공지능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몇가지 예제와 함께 얘기 해 주었다. 하지만 위의장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싸지면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라며 위사에서는 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지금 크런치 이슈 때문에 힘든 상황일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 귀가 의심스러워 다시 한 번 물었다. 아, 그런데 그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위사에도 디자이너도 있고 개발자도 있고 그런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때 위대표가 들어왔다. 위의장과 위대표는 이구동성으로 뭘 그런 거까지 걱정하냐며, 인공지능이 사람 보다 싸지면 위사로서는 좋은 거고 미리 대비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음? 내 가슴으로부터 뭔가 그러니까 크런치 같은 그 무언가가 올라와서 목구멍으로 나오려는 것을 눌렀다. 일단 지금 여기서 그 얘기를 더 하는 것은 타이밍이 좋지 않아 보였다. 적당히 웃는 척 하며 넘겼다.

다음으로 위의장은 이제 인공지능이 뭔지 알겠고, 당신이 똑똑하고 일을 잘 하겠다는 것도 알겠는데 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앗,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아이템에 대해선 앞으로 3년간 내가 뭘 하든 알아서 하고 싶은거 10개를 시도해 보는 것으로 더 이상의 얘기는 필요 없던 것 아니었나? 아이템조차 그런데 헐, 돈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내가 이런 저런 일들을 잘 해 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잘 할텐데 돈 버는 것도 당연히 신경 쓸 생각이었지만 앞으로 더 신경쓰겠다고 했다. 이제 창업도 했고 내가 하는 사업이니 당연히 돈도 더 열심히 벌어 보겠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위의장은 돈을 벌려면 이런 착한 것들로는 돈을 못 번다며 착하지 않은 일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의 일들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 번 내 귀를 의심했고, 가슴으로부터 목구멍까지 뭔가 올라왔지만... 내 입에서는 그렇죠. 그럼요. 원래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잘 먹히죠. 아슬아슬한 것들을 사람들은 즐기죠라며 적당히 응해 주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지금은 투자를 얘기할 때지 그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그 생각을 머리속에서 빨리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으로 위의장은 다 좋은데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다고 했다. 이렇게 돈도 안 보이는데 밸류에이션 육백억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낮춰 달라고 했다. 어라... 이건 또 뭐지. 지난 삼개월간 밸류에이션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이슈화 되지 않았었는데 그만큼 육백억은 굳건한 숫자였는데 마지막 인사 및 악수 자리에서 이건 무슨 얘기지. 일단 나는 이런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짧게 생각하고 빨리 대답하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건 나 뿐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영향이 있는 것이고 너무 중요한 이슈니까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 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잡담을 좀 더 하다가 웃으며 미팅이 끝났다. 위의장은 백억짜리 복권을 사는 기분이라면서, 뭐 돈은 안 보이지만 복권은 원래 그런거고 내가 알아서 열심히 잘 할 것 같으니 잘 해 보라 했다. 나는 투자해 주신 것이 아깝게 되지 않도록 노력 하겠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고, 4시, 위사 투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밸류에이션에 대한 이슈가 있다고 들었는데 삼백억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나는 바로 이 말이 나왔다. 그러자, 아 프리 삼백억이요. 뭐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았는데 사실 통화품질도 안 좋았고, 잘 안 들렸다. 하지만 프리건 포스트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삼백은 그냥... 들을 얘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거참, 협상 전략 한 번 거치네... 하고 생각하며 적당히 넘겼다. 그냥 협상용으로 세게 얘기한 것이지 설마 진짜 삼백억을 원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나서 예전에 투자 업계쪽 선배가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일부 못된 투자사들이 자주 쓰는 전략이 있는데 마지막까지 높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며 다른 투자사들을 다 떨궈내고, 창업자/피투자사가 거절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후에, (궁지 아닌 듯한 궁지에 몰아놓고) 마지막 순간에 밸류에이션을 엄청나게 후려 쳐 버리는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어라? 이게 그건가? 싶었지만, 설마... 위대표와 위사가... 하며 또 넘겼다.

그리고 5시 다시 위사 투자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고생 했다 감사 했다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육백억 밸류에이션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일단 십억 금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돈을 받기 위한 절차에 대해서 얘기했다. 일단 보이저엑스의 통장사본을 위사로 전달 하기로 했고 내가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화요일 오전에 십억 금전대차 계약서를 세부 프린트 해서 도장을 찍어서 퀵으로 보내면 수요일에 위사에서도 도장을 찍어서 퀵으로 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나는 수요일 오후에 일본으로 우주 보고 이사짐도 정리하러 들어갈 계획이었기에 퀵으로 주고 받지 말고 그냥 내가 위사로 가는게 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녁 내내 밸류에이션 삼백억 얘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다른 투자사들과 하던 얘기들도 있고, 멤버들과 약속한 것도 있고, 내가 가졌던 다른 기회들도 있고 등등 해서 십프로 할인해서 오백오십 정도까지는 들어줄까? 에잇. 매우 기분 나쁘지만 오백까지도 들어줘야 할 수 밖에 없나? 그럼 멤버들 한테는 뭐라하지? 멤버들이 나의 협상력에 대해서 실망이 크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위대표에게 연락을 시도 했으나 위대표는 바쁘다고 했다. 그래, 아마 크런치 이슈 등으로 정신 없는 것 같은데, 내 이슈는 잠깐 내가 참고 기다려 주자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연락을 기다렸으나, 밤새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 전화가 왔다. 위사 투자 담당자였다. 메일은 보셨나요? / 아니요. 아직 못 봤는데요. / 그럼 일단 메일을 보시고 전화 다시 주세요.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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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8


4월 25일 화요일, 도장 찍는날 아침, 전화가 왔다. 위사 투자 담당자였다. 메일은 보셨나요? / 아니요. 아직 못 봤는데요. / 그럼 일단 메일을 보시고 전화 다시 주세요.

나는 메일함을 열어봤다. 그리고 다음을 보았다.



헐...

나는 작은 사고에는 당황하는데 너무 큰 사고를 당하면 갑자기 침착해진다.

이 순간 나는 매우 매우 침착해졌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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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9


4월 25일 화요일 아침, 나는 매우 매우 침착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머리가 안 돌아가서 내가 침착하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당장 위대표에게 전화하고 싶었으나 일단 투자 담당자(이하 위담)가 메일을 보고 다시 전화 달라고 했었으니 위담에게 전화를 했다.

위담 얘기에 의하면 어제 밤에 갑자기 위의장이 위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투자를 못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위대표가 위의장을 정말 여러 각도로 설득해 보려 노력 했으나 잘 안 되었단다. 뭐든지 의장이 안된다고 했다 한다. 위대표가 위의장에게 깨진 것 같다고도 했다. 나야 이 위의장, 위대표, 위담 셋의 관계도 정확히 모르고 성격들이 어떤지도 잘 모르니 어디까지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위담은 밸류에이션을 조정한다고 투자가 진행될 것도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그럼 오늘 도장 찍으려 했던 구억은? 그것 역시 안 된다 했다. 위의장이 명확히 얘기했단다. 안 된다고. 투자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그걸 왜 하냐고. 위담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했다. "비일비재"라는 단어를 매우 여러번 사용했다.

난 더 이상 위담과 얘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위대표에게 전화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위대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카톡으로 연락했더니 곧 연락을 준다고 했다. 이렇게 중요한 건을 어떻게 이메일로 통보할 수 있으며, 중국 출장 일정을 취소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전화도 안 받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참았다. 한시간 반쯤 참고 있으니까 카톡이 왔다. 중국 비행기 탔으니까 도착해서 연락 주겠다고 했다. 중국 이슈가 뭐고 크런치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나로서는 알길이 없으나 뭐 위사 입장에서는 이제 이건 끝난 건이라 이건가? 중국 이슈와 크런치가 더 중요하다 이거지? 아니, 그런데 크런치가 중요하다면 중국도 안 갔을테니 중국이 제일 중요한 건가보군... 했다.

멤버들, 그리고 집주인(사무실 임대인)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 중에서도 일단 바로 어젯밤에 나와 연봉협상을 끝내고 보이저엑스의 슬랙에 가입하고 다른 멤버들과 인사까지 한 멤버 T가 생각났다. 혹시 그가 오늘이라도 현재 직장에 퇴사 의사를 밝히지 않을까? 그러면 얼른 말려야 하는데, 하지만 내가 이걸 사실 그대로 우리 멤버들에게 얘기했다가 소문이 퍼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소문이 퍼지는 순간 이 협상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결국 멤버들에게도 손해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일단 어제 확정된 그 멤버 T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현재 회사에 어디까지 얘기한 건지 물어봤는데 아직은 주변 사람들 몇 말고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왜 그걸 묻는지는 차마 얘기를 못 하고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정말 죄스러웠다.

다음으로 우리 계약서를 검토해주던 변호사 후배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얘기했고, 얘기를 주고 받던 중 정말 소송이라도 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이 나왔고, 난 당연히 소송이라도 해야지. 우선 협상을 해 보고 안 되면 소송이라도 해야지라고 얘기했다. J는 일단 그러면 소송 자료 준비 해서 오늘 밤에 당장 가지고 온다고 했다. 엄청 힘이 되는 말이었고, 고마웠다. J는 우리의 십억, 백억 계약서 검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 준 변호사다.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내가 새로 변호사를 찾아서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에 J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다음으로 인터넷, 게임, 투자, 스타트업, 그러니까 우리 동네 및 옆 동네까지 다해서 슈퍼셋의 대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일단 이 선배는 "뭐 그런 X 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 했다. 다 떠나서, 매우 고마웠다. / 형, 그런데 위담은 이게 비일비재 하다던데요? / 아니, 투자를 진행하다가 깨지는 경우는 비일비재 하지. 하지만 이렇게 대표가 약속하고 투자사는 깨질 위험이 아예 없는 것처럼 굴다가 그렇게 갑자기 메일로 깨 버리는 경우는 없지. 미국 같으면 말로도 그렇게 안 하지만 말로 그렇게 해도 결국 문서나 메일을 보면 그 끝에는 "이건 이러이러해서 깨질 수 있다"라는 내용이 항상 들어가 있어 / 아 그렇군요. 위사는 그런데 그런게 전혀 없었어요 / … / … / … /

형,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바로 잠적 같은 선택도 있겠지만, 제가 아시다시피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일단 수습 후 산에 들어가기부터 소송가기, 후속투자 유치 등등 여러가지 옵션이 있는데... / 그런데 세동아, 사업하는 사람들은 위기에서 기회를 본다. (생략) / (생략) / … / 감사합니다. /

그리고 다시 바로 멤버 T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실대로 얘기했다. T는 일찍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미안하다 힘내라 등의 인사를 주고 받고 끊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전화를 걸고 사실대로 얘기했다. 멤버들은 나의 예상, 아니 두려움과 달리 단 한명도 내 책임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내가 제일 힘들테니 본인들 걱정은 일단 하지 말라고 했다. 이미 퇴사한 멤버들, 곧 퇴사할 멤버들이었는데 진짜 고마웠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 했다.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최고다. 우주는 잘 있다고 했다. 일단은 다음날 수요일에 내가 일본에 가려던 계획은 취소 하기로 했고, 이사 계약은 잠시 홀드해 두기로 했다.

스타트업에 대해서 경험이 매우 많은 회계사, 스타트업 창업가들, 투자가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가지 얘기를 했지만 몇가지 공통된 얘기가 있었다.

1. 심하네.
2. 소송 가면 3년 걸린다.
3. 얼른 잊는게 답이다.
4. 소송 가면 또는 이걸 세상에 알리면 후속투자 받기 힘들어진다.

4번. 후속투자. 이게 제일 크게 들렸다.

오후 네시반. 중국 도착하면 전화 준다고 한지 다섯시간이 지났는데 왜 전화가 안오나. 도대체 중국 어딜 갔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나. 위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봤더니 당황스럽게도 바로 받았다. 지금 바로 내려서 통화하기 어려우니 다시 전화한다고 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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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0


4월25일 화요일 오후 17시, 드디어 위대표와 통화가 되었다. 중국 통신 네트워크 사정이 안 좋은지 중간에 전화가 네다섯번 끊겨서 안 그래도 어려운 얘기 더 어렵게 얘기했다.

위대표의 얘기는 새벽에 받은 메일과 오전에 위담이 얘기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의장이 이 투자는 복권인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 복권 같다고 했고, 그래서 이 투자는 그만 두라고 했다는 거다. 낮에 미팅 후에만 해도 분명히 하기로 했는데 밤에 맘을 바꿨다는 거다.

뭐, 위의장의 마음이 바뀌는거야 그럴 수 있다. 위의장도 사람이니까. 또 위의장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나 보이저엑스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백억을 투자하기에는 불안해 보였을 수도 있다. 내가 위의장이 생각하는 돈 버는 방법, 그러니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은 못 할 사람으로 보였겠지. 또 해고도 쉽게 못 하는 사람으로 보였겠지. 그게 맞고. 사람 잘 봤다. 위의장은 그래야 사업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한데, 나는 안 그래야 사업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거야 위의장 마음이니까 그걸 내가 위대표와 논의할 것은 아니었다. 위대표에게 그럼 그 동안 위의장과 얘기 없이 진행 했던 것인지 나한테는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얘기한 것이지 물었다. 위대표는 당연히 위의장과 얘기하면서 진행 하고 있었고 위대표 본인은 이렇게 될 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뭐, 전화 붙잡고 위대표와 얘기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란 것을 알았으니 이제 지금 벌어진 일들에 대한 수습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깊이 생각해 본 건 아니지만 일단 얘기를 시작해 보기 위한 임시안들을 급히 몇가지 준비 했다며 몇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 모든 제안의 전제는 여하간에 원래 주기로 한 구억을 줄여서 오억만 우선 대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위사가 마음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그 동안 만들어온 관계가 있고, (내 생각에) 위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그 정도 호의 또는 책임지는 모습은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 얘기는 긴 설명 없이 짧게 넘어갔다.

그리고 임시 제안들에 대해서 하나씩 이야기 했다. 그러니까, 일단 낮은 밸류와 적은 투자금으로 보통주로 투자 하고 다른 투자사와 후속투자 진행 하는거, 위로금 내지는 위약금을 주고 관계를 끝내는 거, 위대표 개인이 여력이 있다면 보통주로 조금만 투자 하는 거에 대해서 얘기했다. 위대표는 이거 모두 다 안 되고, 그 전제인 대여도 안 된다고 했다.

대여도 안 된다... 오억 대여도 안 된다. 대여는 부도 위험 때문에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래. 부도 위험이라... 그러니까 육백억 밸류를 인정하고 확실하게 백억을 투자 하기로 해서 만들어진 회사에게 갑자기 백억을 못 주겠다고 하면서 하는 얘기가 부도 위험 때문에 오억 빌려주는 것 조차 안 된단 말이지...

그러면 혹시 위대표가 생각하는 다른 방안은 있는가? 물었다. 위대표는 아마 없을 것 같고 생각나더라도 실행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흠... 위대표는 다음 회의가 있다고 했다. 나는 크게 실망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저녁에 변호사 J를 만나기로 했고, J와 얘기를 하려면 뭐라도 먹어야 할 듯 해서 일단 식당으로 향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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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1


J가 도착했다. 원래도 늠름하지만 오늘따라 특별히 더 늠름해 보였다.

J와 얘기한 내용들을 내가 이해한 버전으로 변호사의 언어가 아닌 나의 언어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 동안 위대표, 위담, 위사 등과 주고 받은게 많아서 그들이 어떻게 잘못된 확신 등을 심어 주었는지 증명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증명 되더라도 피해 내용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증명하기 어렵고 증명 되더라도 피해액이 너무 작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한국에 와서 집을 산 것은 이 사건 때문이 아니라 아이 때문이라고 상대측에서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측에서는 보이저엑스 사업 때문에 한국에 거주할 집을 샀다고 해야 하는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또 예를 들어 멤버들이 퇴사 한 것 또한 위사가 직접 그 멤버들에게 퇴사를 하라고 한 것이 아니므로 위사의 책임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혹시나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피해액은 퇴사 후 못 받은 한두 달치 월급 정도일거다. 사무실 또한 그런데 사무실은 원래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것이므로 구했을 뿐이다라고 상대측이 주장을 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원래 사업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고 얘기해야 하는데 만약 후속투자를 진행하게 되면 원래 사업을 할 생각인 것으로 되어 버린다. 큰 사무실을 구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퉈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여하간 피해액은 아무리 커도 몇천만원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소송에 들어가면 (투자, 창업 선배 분들이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3년 정도 각오 해야 한다. 그 비용 또한 몇천 만원 들어간다. 상대야 로펌에 던져두고 신경 안 쓰면 끝이지만 나야 그럴 수 없지. 그런데 그럼 나는 사업은 어떻게 하나. 후속투자는 또 어떻게 하고.

그제서야 내가 크게 착각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난 이 계약이 혹시나, 정말 만에 하나 잘 못 된다 하더라도 그 증거가 워낙 많으니 피해 입증이 쉽고, 진행 되던 계약 금액도 워낙 컸으니 피해 보상도 꽤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막연히... 정말 대강 그렇게 생각했었다.

위대표가 우리 업계 상장사의 대표로서 확언 한게 너무 많고, 위의장이든 그 누구든 간에 아무튼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인데 레퓨테이션 리스크를 생각할 때 그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너무 낮고, 위사는 돈도 많다고 하고... 등등, 그래서 계약이 깨졌을때의 피해 입증 방법과 피해 금액의 크기에 대해서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정확하게 알아본 적이 없었다.

정말 완전히 착각했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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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2


J와 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밤 10시였다. 24시간 전 어젯밤 10시에는 그랬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계약서 프린트 해서 도장 찍고 퀵을 보내야 하는데 퀵 업체에서 계약서를 잘못 전달할 가능성은 없겠지? 내가 그냥 갈까? 퀵을 신청하면 30분 정도 후에 오던가? 24시간 전만 해도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나는 그런 것을 고민 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걸까.

아무튼 일단 이 사태를 수습을 하려면 멤버, 변호사, 창업, 투자 선배들 등등을 많이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일단 오늘은 자야 한다. 자자. 자자. 자자. 일단 자자. 내일을 생각해서 자자.

못 자겠다.

생각이 너무 많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우선 J와 얘기하면서야 깨달았지만, 나는 만에 하나 있을 피해에 대해서 피해 입증과 피해 금액에 대해서 너무 대충 대강 쉽게 생각했던게 있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중요한거. 나는 상장사인 위사의 위대표가 확실하다. 이사회도 문제 없다. 멤버들 잘 구하고 있죠? 사무실도 좋은거 구해요라고 얘기하는 것을 마치 네이버의 한성숙 대표이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나델리 대표 이사가 얘기하는 것처럼 들었다. 아니 사실 사람을 그 정도로 믿은 건 아니고, 그냥 그 정도 크기의 회사에서 그 직책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의 무게를 그렇게 생각했다. 상장사의 대표이사가 대내적으로도 아니고 대외적으로 그것도 여러번 한 말이니까.

아... 심각한 착각이었다.

나는 또 뭐를 잘 못 한 걸까.

위의장은 무엇이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것일까.

결국 새벽까지 못 잤다.

그러다 이불킥. 말그대로 이불킥했다. 아, 이게 바로 이불킥이구나 했다.

내가 비록 이것 저것 잘 못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위사가 저렇게까지 무책임하게 나오는 건 너무 심한 것 같았다. 어차피 이제 더 이상 협상의 여지도 없어보였다.

이걸 "후속투자"를 받기 위해서 그냥 넘어가는 건 나를 위해서도, 멤버들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업계를 위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만의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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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3


4월 27일 새벽. 이불킥 하고 바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정의 사회 구현. 이거 해야겠다고 앉았다. 그리고는 위사라는 얘기는 빼고 투자 받을 때 주의할 점 등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서 페북에 올렸다. 새벽이었는데도 금새 좋아요가 10개 정도 달렸다. 어라. 좋아요가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잠시 후 창업가이자 투자가이신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배는 애 때문에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가 우연히 내 글을 봤다. 힘든 거 알겠고, 이러저러 하고, 그런데 그 글은 지우는게 좋겠다는 거였다. 선배는 이런 글 올리면 나를 아는 사람들이야 그런 오해를 하지 않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뭐 하다가 잘 안 되면 페북에 글쓰는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일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후속투자 받기 힘들어진다고.

후속투자. 멤버들 생각 하면 일단 남겨두어야 하는 옵션이다.

ㄱㅐㅆㅑㅇ. 나는 원래 말로도 욕은 잘 못 하는데, 이게 문자로 바로 나갔다. 선배말이 너무 맞는 말로 보였다. 그리고는 바로 형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요 하고 글을 지웠다. 그리고 선배는 아주 좋은 창업 스토리가 만들어졌으니 힘내라고 했다. 정말 고마운 말이었다.

그리고 좀 지나 아침이 되니 위담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비일비재란 단어를 여러번 썼다. 그러면서 날 생각해서 하는 얘기니까 빨리 후속 투자자를 찾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위사 투자팀하고 법무팀 등이 아무리 같이 생각하고 찾아 봐도 회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빨리 사무실 해약 하고 멤버들 위해서 후속 투자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사무실과 멤버들 얘기를 너무 반복 하길래 난 위담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얘기한다고 해도 위담 뒤에는 위사가 있는 것으로 보여서 좋게 안들리니까 보이저엑스가 어떻게 할지는 위담에게 듣고 싶지 않으니 그 얘기는 그만 하라고 했다. 사실 위담은 그 전에 내가 의장 만나러 간날 크런치 이슈에 대해서 얘기 꺼내면서 세상에 남 생각 하는 사람 어디있냐고 다 자기 생각 해서 하는거라는 얘기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위담이 보이저엑스를 생각해서 한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위담에게는 위사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만 듣고 싶다고 했다. 위담은 위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고 더 찾아보겠다고 했다.

참 빠르게도 소식을 들은 분들로부터 문자나 전화가 자꾸 와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밤도 샜는데 낮에도 한 시간 밖에 못 자서 머리가 좀 안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판단을 잘 못 하면 위험할텐데... 어제 잘 잤어야 하는데... 하면서 후회 했다. 그리고 오늘은 최대한 판단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사무실은 어떻게 해야겠기에,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 보니, 계약 이후에 벌써 많은 일이 진행 되고 있었다. 이번에도 빨리 입주할 수 있는지 물어 보려고 전화 했냐고 하시는데 차마 제대로 대답을 못 드리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위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다른 얘기는 일단 지금은 접어두고 집주인이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고 참 좋은 분인데 나 혼자 가서 얘기하는 것 보다 위대표도 같이 가서 얘기해 주면 집주인이 좀 더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부탁인데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위대표는 큰 회사가 같이 가면 효과가 더 안 좋을 거라며 거절했다.

위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회사가 해 줄 수 있는게 없는지 찾아 봤는데 못 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빨리 사무실을 해약하라고 또 얘기했다. 사무실 해약 하는데 본인이라도 같이 가줄 수도 있다고 하길래 일단 말씀만 감사히 받아두겠다 하였다. 변호사 J가 사무실 크기가 커진 것에 대해서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했었는데 위사에서도 그래서 자꾸 빨리 사무실을 해약 하라고 얘기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녁, 이미 조인한 멤버, 그리고 앞으로 조인하기로 한 멤버들이 다같이 모였다. 이렇게 보이저엑스 멤버들이 모두 다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 첫 모임 주제가 참... 이제 언제 또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래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기 소개 인사 정도는 하고 시작했다.

너무 미안해서 입이 잘 안 떨어졌지만... 아무튼 나는 멤버들에게 현재까지 있었던 일과 어제 오늘 사이의 상황을 설명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마 그 동안 같이 그려왔던 "안 헝그리 스타트업"은 못 할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그래도 스타트업을 계속 할지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대부분 이미 높은 연봉을 받고 있고, 또 아이도 있고 한 사람들이라 과연 "헝그리"를 택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헝그리"는 전혀 예상에 없던 바였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어느새 나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졸린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내일은 제발 맨정신에 돌아다니고 싶었다. 사케 중에 단거를 달라고 했더니 진짜 단 걸 줘서 많이 마셨다. 덕분에 집에 들어가자 마자 바로 잘 수 있었다. 푹 잤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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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4


이제부터는 시간순으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바로 며칠전 얘기기도 하고. 소재별로 하나씩 써야겠다. 이번에는 사무실.

사무실 얘기는 자세히 하면 안 될 것 같다. 집주인은 제삼의 피해자이신데. 괜히 그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 안 될 것 같다. 마치 내가 한국에서 살 집을 구했듯, 집주인도 가족 다 같이 이곳을 떠나 새로 살 집을 계약한 상태였다. 그리고 몇가지 큰 피해가 더 있는데, 생략한다. 집주인이 원래 사업 하시던 분이고 해서 정말 많이 이해해 주셨다. 원래 드렸던 계약금만 포기하고 해약을 하기로 최종적으로 얘기가 되었다. 정말 많이 죄송했는데, 집주인은 이렇게 계약금 받는거 기분도 안 좋고, 계약금 잘 보관하고 있을테니 나중에라도 비어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오라고 친절한 얘기까지 해주셨다.

원래 통상적으로 계약금만 포기하면 해약할 수 있다. 이번 계약도 계약서 내용상 그랬다. 그런데 만약에 집주인이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믿고 이런 저런 큰 피해를 입게 되었으므로 계약금 이상을 달라고 요구했다면 나는 보이저엑스의 대표로서 당연히 거절 해야 했겠지? 그런데 그러면 내가 계약 당시에 집주인에게 이 계약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된다고 했던 말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결국 나와 보이저엑스도 위대표와 위사랑 똑같이 되는 건가.

이 생각이 나를 매우 심하게 괴롭혔다. 평소 같으면 죄송하긴 해도 그렇게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내가 집주인에게 말한 것들도 있고 위사가 말을 바꾼 것 때문에 나와 멤버들이 괴로운 상황에 있는 걸 생각하니... 많이 괴로웠고 어떻게든 계약을 살려 볼 수 없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며칠간 사무실 관련해서 회사나 내 입장에서 자꾸 무리한 것 같은 판단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게 또 다시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한 것 같은 판단을 할때마다 뒤에서 위의장이 거봐 넌 돈을 못 벌 거야 투자 안 하길 잘 했네라며 속삭였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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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5


예전에 창업자였고, 그 이후 현재까지 오랫동안 투자업계에 계시는 선배가 얘기했다.

이렇게까지 심한 경우는 흔하지 않지만 비슷한 일은 많이 있어. 그런데 너 정말 이거 백억 계약서 도장찍기 전에 깨져서 천만 다행인 거야. 백억 계약서 도장 찍었으면 너는 정말 더 크게 일을 벌였을 거잖아? 많은 창업자들이 그렇게 생각해. 이제 계약서 도장 찍었으니 되었다고. 이제 돈 들어올 일만 남았다고. 공장 부지 사고 그러는거지. 그런데 투자 계약서에는 투자자가 그 계약을 깼을때 위약금 같은게 없어. 그걸 경험 없는 창업자들이 보통 생각을 못 하지. 그러다 돈 안 들어오면 X 되는거지. 헉. 그러니까, 계약서에 도장 찍었다 해도 돈 들어 올때까지는 아무것도 벌이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 나는 만약 십억 계약, 더 나아가서 백억 계약에 도장을 찍었었다면, 일을 정말 더 빨리 크게 벌였을 거다. 투자는 일 하려고 받는 거지. 크게 받았으면 크게 일을 해야지. 만약 정말 도장을 찍었다면, 그랬다면 이번 피해 규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 그러니까 한 열배 사이즈 쯤의 피해를 나와 보이저엑스 그리고 그 관련된 사람들이 입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리고 또 몇몇 창업자 겸 투자자인 분들이 얘기했다. 그렇게 깨질 계약이었으면 지금 깨지는게 가장 좋은 거라고. 계약 되고, 입금 되고 나서도 투자자가 창업자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이 매우 많이 있는데, 이렇게 투자를 깰 수 있는 투자자라면 빠른 단계에서 피할 수록 좋은데, 이제라도 피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투자자는 여러가지로 힘이 많기 때문에 보유한 지분율 이상으로 괴롭히는 방법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투자자가 지분율이 낮으면, 그걸로 나와 회사는 괜찮을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투자자는 단 일프로만 가지고도 창업자를 괴롭 히려고 마음만 먹으면 많이 괴롭힐 수 있었다. 큰 투자사라면 더 그렇다.

또 어떤 젊은 창업자가 그랬다. 정말로 우리 업계에도 투자사가 피투자사를 폭행 후 인감 도장 뺏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또한 창업자 중 일부와 투자사가 짜고 나머지 창업자들을 엿 먹이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니까 투자사를 잘 고르는게 정말 중요한데 그런 이상한 투자사들은 최대한 빨리 피하는 게 좋다고.

다 이해했다.

아니 그런데 내가 그 동안 위사와의 계약에 대해 얘기를 나눈 그 많은 분들, 그러니까 십여명의 업계 네임드인 분들 및 스타트업이나 투자나 사업 경험이 정말 많은 분들은 위사, 위대표, 위의장을 직접 알거나 한다리 건너서 다 아는데 왜 그 얘기를 이제서야 하는거지? 우리 멤버들도 그랬다. 위사에 대해서 이미 안 좋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고. 그럼 왜 멤버들도 나에게 세게 얘기를 안 했지? 그리고 나도 위사 보다 좋은 투자사가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왜 굳이 위사를 선택했지?

그건 결국 돈의 힘이었다. 이 일이 터진 후에 여러 분들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나에게 이전에는 주의를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얘기 해 주었다. 결국 정리해 보면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랬다. 투자금이 너무 크고 밸류에이션이 너무 좋고, 투자 조건도 너무 좋아서, 차마 위사, 위대표, 위의장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잘 진행 되어가고 있어 보이는데 초칠 필요 뭐 있나. 그런 것이었다. 얘기를 꺼낸다 하더라도 살짝 걱정은 있지만 그 정도 조건이면 괜찮지. 그 정도였다. 열심히 신나게 결혼 준비 중인 친구에게 결혼 상대방의 험담을 하긴 좀 많이 부담 되겠지? 그래서 다들 지나고 나서야 나에게 제대로 얘기해 주었다. 사실 이런 저런 걱정이 있었는데 그걸 세게 얘기를 못 했다고. 아주 여러 분야의 여러 입장의 여러 분들께서 나에게 똑같이 그렇게 얘기했다. 알고 있었는데, 미리 더 세게 얘기할 걸 그랬다고.

나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사적으로 돈에 크게 끌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돈 있으면 더 큰 집 살겠지. 그 정도였다. 진심으로 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생각한다. 이번에도 사적으로 돈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적으로 돈을 버는 것만 생각하면 더 좋은 선택지들이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사업이란 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고, 사업을 하는데 돈이 얼마나 중요한 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에 백억이라는 큰 돈에 끌렸다. 난 나 개인이 아니라 회사 대표로서 행동하고자 노력했다. 회사 대표로서 큰 투자금과 좋은 투자 조건에 많이 끌렸다.

계약서 내용, 그러니까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히 알기에 나는 계약서에 정말 많은 시간을 썼다. 회사 대 회사, 비즈니스 관계에서 계약 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나.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힘들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계약서가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러니까 뭐 파이썬 만큼 쉽게 보이지는 않더라도 C 정도로는 보일 정도로 계약서를 열심히 많이 살펴 보았다. 주변에서 나의 계약서 공부를 도와주신 분들도 많았다. 나는 계약서 내용이 좋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양사가 모여 "위 메이드 계약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계약서에 신경 쓰느라 계약 상대방을 보지 못 했다. 투자사가 얼마나 중요할까. 다른 투자사에 비해 평판이 안 좋은 투자사가 찾아와서 똑같은 조건에 투자금을 두 배 주고, 밸류에이션도 두배 쳐 준다고 하면 과연 그 투자를 피해야 할까? 아니 피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피해야 한다. 정말. 그게 두배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돈에 끌리지 않듯이, 그리고 문서 보다는 사람을 더 보듯이, 그게 내 스타일이듯이, 그러고도 여태껏 잘 먹고 잘 살아 왔듯이, 사업적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다. 돈에 과하게 끌리지 않고, 문서 보다 상대방을 더 신중히 보면 되는 것이었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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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16 - 마지막(?)


이번이 마지막 편이 될 수 있을까? 원래는 이번 글이 쓰고 싶었다. 신뢰에 대한거. 그리고 그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 후다닥 써야지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글이 15편이나 되어버릴 줄 전혀 몰랐다. 키보드 잡았을때만 해도 이번 글 포함 글 하나로 끝날 줄 알았다. 잠깐 수다 떨려고 앉았다가 얘기 하다 보니 밤새고 해가 뜨고 있는 상황이랄까. 카페에서 하루 종일 수다 떨고 헤어진 후 또 저녁에 전화로 수다 떠는 그런거.

멤버들에 대한 미안함이 정말 컸다. 나는 위대표의 말을 믿었지만 멤버들은 나의 말을 믿었다. 어쩌면 위대표는 위의장을 믿었고, 위의장은 위대표를 믿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믿을 용기는 없어 보인다만.

아무튼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저 사람이 이 얘기를 들으면 나와 위대표는 비슷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건 그 사람이 눈을 가려서 그렇다.

위대표와 위담이 얘기했다. 위대표와 위사는 다른 거고, 위사는 위대표가 한 말에 대해 아무 책임, 그러니까 단 한푼의 책임도 질 수 없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러한 "위사"의 입장을 나에게 구두로 메일로 통보한 것도 "위대표"다. 그 통보는 믿어도 되는 건가? ㅎㅎ.

투자에 대해서 위대표가 여러번 확실하게 한 말, 메시지, 메일이 위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었다면 이번 투자 취소에 대해서 위대표가 한번 메일 보낸 것은 위사의 공식 입장이라고 볼수 있을까? 위사의 투자 취소에 대한 공식 입장은 누구에게 어떻게 들어야 할까? 위사의 도장이 찍힌 서류를 받아야 확실한 걸까? 아무튼. 위의장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차피 연락 해 봐야 만나지도 못 할 거다.

하지만 보이저엑스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현재 보이저엑스의 창업자이자 현재 100% 지분 보유자이고 의장이고 사장이고 대표이사다.

그래서 나는 나와 보이저엑스의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뢰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는데 나라도 좀 버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사 버리게된, 이제는 그 계약금 때문에 되돌릴 수도 없게된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통해서 사업을 더 이어갈까 생각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니 일단 이억 또는 삼억 정도를 담보 대출을 할까 싶었다.

그 생각이 하루 정도 갔던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처음에 법인 설립 할때 일억 넣었는데 내가 이 이상은 절대 내 돈 넣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 마음이 생각났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엔젤 선배들, 성공한 동료 창업자들이 생각났다. 몇시간 연락을 돌렸더니 순식간에 몇억의 투자금이 모였다. 이 사람들도 참... 뭐 대부분 아무 내용도 듣지도 않고 일단 급할텐데 얼마 넣어주면 되는지부터 묻는다. 연휴 기간이다 보니 해외에 계신 분들이 많았는데, 급하면 엔젤 투자(별 조건 없는 보통주 투자) 계약서 도장 찍기 전에 일단 입금부터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투자라는 업에 대한 나의 신뢰가 땅을 뚫고 지옥으로 향해 가고 있었는데, 금새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보통주 계약서를 후딱 작성했다라기 보다 기존에 있던거 가져와서 수정했다. 그 동안 계약서를 하도 많이 봤더니 두장짜리 계약서 만드는 데는 뭐 몇 십분도 안 걸렸다. 회계사 변호사 투자가 등의 검토를 받았는데 크게 수정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이 기쁜 사실을 알렸다. 우리가 최소한 일년은 더 해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계약서 도장 찍기도 전에 일단 입금부터 받기 이틀 전. 멤버들, 사무실 임대인, 엔젤들 그리고 몇몇 관계자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아주 작은 이슈들, 미묘한 변화들이 끊임없이 생겼다.

그 정도야... 사실 늘 있는 일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는데 나는 스트레스를 너무 크게 받고 있었다. 스트레스 내성이 매우 떨어져 있었고, 너무나 민감한 상태였던 거다.

밤에 5개월 된 우주가 옆에서 크게 울고 있는데, 나는 스트레스에 쩔어서 일단 잘 들리지도 않았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렇게 몇분 있었다.

그리고 또 이불킥 하고 우주는 아내에게 맡기고 옷 챙겨 입고 전화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엔젤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멤버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아무튼 수십통의 전화를 돌렸다.

원래 나는 몇십억의 투자금을 누가 그냥 내 앞에 갖다 준다 하더라도 사업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나는 여러 명의 엔젤들에게 내가 먼저 연락을 해서 몇억이라도 투자금을 모아서 사업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잃어 버린 신뢰를 새로 끌어온 신뢰로 메꾸려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게 돌려 막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를 손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주의 힘을 다 모아서 실행 했다.

엔젤들이 얘기했다. 다른 듯 비슷한 듯 한 얘기들이었는데 섞어 보면 이렇다. 극도의 공포 상태구나. 사실 번지 점프, 그거 그냥 하면 되는 건데, 누가 뒤에서 발로 차면 안 되지. 사업은 워낙 힘든 건데 시작할때라도 편한 마음으로 시작해야지 그렇게 두려운 상태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 지나고 보면 이거 다 별거 아닐 거다. 사업 하다 보면 다 겪는 과정이다. 힘 내라.

멤버들이 얘기했다. 마음 회복될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이렇게 보이저엑스 호는 일단 멈췄다. 우주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크게 잘 울어줬다.

나는 이 상태에서는 일단 아무 생각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 하지 말자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 4개월간을 돌이켜 보며 반성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 했다.

이제 글쓰기도 끝났고, 과거고 미래고 다 잊고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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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 동안 겪고 깨달은 일을 정리해 본다. #8 번외



연재글을 올리기 시작한 뒤로, 위사의 투자 담당자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 왔다. 나는 처음 듣는 고사성어라 사전도 찾아봤다.



절영지연: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음 (https://story.kakao.com/ch/olstory/f5C3iRTGY29)

나나 고사성어나... 참 고생이 많다.




덧글

  • 핑크 코끼리 2017/05/29 00:57 # 답글

    밸리 타고 들어왔습니다. 글 순에 따라 저도 설레고 놀라고 희망에 차오르고 기사에서 보는 성공 스토리인가 하다가 중간부터 숨쉬기 힘들어지더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힘내세요.
  • 물고기 2017/05/29 02:10 # 답글

    저도 첫글에서 놀라고 뒤로갈수록 허망함과 화가나네요 ... 고생하셨어요.. 긴 글이였지만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말들이 와닿네요...힘내세요!
  • Heb614 2017/05/29 06:56 # 답글

    기운내세요!
  • atom 2017/05/29 12:23 # 삭제 답글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위메이드 측 사람들은 정말 의장부터 투자 담당까지 참 엉망이군요.
    스트레스로 몸 상태도 엉망이실텐데,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 격화 2017/05/29 14:12 # 답글

    위메이드는 마음대로 하는 헤드들 밑에 예스맨만 모여있는거죠.
    조직으로써의 자정기능 따윈 없이 지시에만 충성하는 사조직, 비슷한 것들.
  • 2017/05/29 14:43 # 삭제 답글

    페북에서 읽었었어요... 주인공이 여기 계셨군요.. 읽으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앞으로 더 잘 되실 거에요.
  • 긁적 2017/05/29 16:04 # 답글

    하이고... 고생하셨네요. 좋은 글 잘 보고 여러 교훈 얻고 갑니다.
  • 액시움 2017/05/29 16:33 # 답글

    와 투자담당자 진짜 인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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